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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황금돔사원, 알 아크사 모스크, 통곡의 벽, 안타까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연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들간의 싸움은 이번만이 아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쌓여진 갈등이 시시때때로 터져 나온 역사속 하나의 사건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스라엘 안에는 팔레스타인이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나누어 거주하고 있다.

요르단강 서안 지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지역이자 팔레스타인의 행정 구역이다. 이 지역은 요르단강 서쪽에 있는 둑이라는 의미로 서안 지구(West Bank)로 불리며, 남쪽, 북쪽, 서쪽으로는 이스라엘 영토로 둘러싸여 있고, 동쪽으로는 요르단과 접한다. 예루살렘은 이 지역 내부에 위치하며, 베들레헴, 여리고, 사마리아 같은 곳들도 서안지구에 위치한다.

요르단강 서안 지구 안에는 황금돔 사원 (Dome of the Rock)과 알 아크사 모스크 (Al-Aqsa Mosk)가 있는데 서로 다른 사원들이다.

예루살렘 황금돔사원, 통곡의 벽, 알아크사 모스크
 
 
 

예루살렘에는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등 세 종교가 동일하게 신성시 여기는 성전산이라는 곳이 있다. 유대인들은 '경외, 빛'이라는 뜻을 가진 '모리아산'으로 부르고, 무슬림들은 '거룩한 땅'이라는 뜻을 가진 아랍어 '아람 알 샤리프'라고 부른다. 영어로는 'Temple Mount'라고 한다.

예루살렘은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각각 서쪽과 동쪽으로 븐할하고 있는데 성전산은 동 예루살렘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세개의 종교가 공통으로 여기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지금으로부터 약 4,000년 전 그의 아들을 여호와께 제물로 바치려 했던 바위가 있는 장소이다. 바위의 크기는 길이가 약 13.5m, 폭 10.8m, 높이 1.8m 정도이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아들이 '이삭'이라고 믿고 있고, 무슬림들은 이스마엘이라고 믿는다. 이삭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와 여종 하갈로부터 출생한 배 다른 형제로 이스마엘이 이삭보다 14살 많다.

 

 

 


 

이스라엘의 역사

 

히브리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가족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나서 애굽 곧, 이집트로 가게 된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이집트의 왕 파라오(바로)가 바뀌면서 히브리인들은 노예로 전락한다. 노예 생활만 400년 이상하게 되는데 결국 선지자 모세에 의해 히브리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한다. 곧 성경의 출애굽 사건이다.

광야에서 40년 가량 생활한 끝에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히브리인들은 기원전 1030년경 이스라엘 왕국을 건국한다.

초대왕은 사울이고 뒤를 이어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된다

솔로몬왕은 치세 4년째인 기원전 967년경 제단으로 쓰였던 모리아산 아브라함의 바위 위에 성전을 짓기 시작해서 기원전 960년경 완공한다.

솔로몬 성전이라고도 불리는 제1성전 지성소에는 언약의 궤를 모셔 두었다. 언약궤에는 모세가 여호와로부터 계시를 받은 십계명이 적힌 돌판과 만나 항아리, 아론의 싹난 지방이가 들어있다.

솔로몬 왕이 죽고 난 뒤 이스라엘 왕국은 북이스라엘 왕국과 남유다 왕국으로 분열되고 북이스라엘 왕국은 아시리아(앗수르) 왕국에 의해 기원전 722년에 멸망하고, 남유다 왕국마저 이웃한 바빌로니아(바벨론) 왕국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느부갓네살)에 의해 기원전 587년에 멸망한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바빌로니아로 끌려가서는 60년 가량 포로 생활을 하는데 이것이 바로 바빌론 유수이다. 이때부터 유대인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유대인들이 풀려나게 된 것은 아케메네스 왕조(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고레스) 대왕에 의해서다.

기나긴 포로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기원전 516년경 스룹바벨이라는 사람의 지휘 아래 성전을 재건하는데 스룹바벨 성전으로도 불리는 제2성전이다.

시간이 흘러 유대인들의 땅은 기원전 63년 로마 제국에 의해 점령당하는데 헤롯이 로마 제국에 의해 유대인들의 왕이 된다.

헤롯왕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기원전 19년 제2성전을 더 크게 짓는데 이것이 바로 헤롯 성전으로도 불리는 제3성전이다. 하지만 제 3성전은 기원후 70년 발생한 유대인들의 독립운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로마 제국의 군인들에 의해 불타서 파괴된다.

이후 독립에 실패한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서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지는데 이를 '디아스포라'라고 한다.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떠나버린 팔레스타인은 7세기까지 '비잔티움 제국'이라고도 불리는 동로마 제국의 통치하에 들어간다. 하지만 비잔티움 제국은 이웃한 사산왕조 페르시아와 빈번히 싸우다보니 양쪽 세력이 모두 약해졌고 결국 638년 이슬람 세력이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하게 된다.

황금돔 사원 Dome of the Rock

그리고는 이슬람교의 우마이아 왕조의 5대 칼리프 '아브드 알말리크'의 명령에 따라 691년 성전산 바위 위에 사원을 짓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 볼 수 있는 황금돔 사원이다.

꾸란 17장 1절에는 알라의 종을 밤새 메카사원에서 아득히 먼 사원으로 데려갔다고 적혀 있는데 오마이아 왕조는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부라크라는 천마를 타고 도착한 곳이 신성산이라고 해석한다.

 

그 이유는 당시 이슬람교의 중심이 메카였는데 우마이아 왕조는 이슬람교의 중심지를 자기네 근거지인 현재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쿠스 근처로 옮기고 싶어했다.

그래서 무함마드가 천마를 타고 직선거리로 약 1,486km 거리를 순식간에 날아서 성전산에 도착했다고 자의적인 해석을 한다.

무함마드는 성전산에서 유대인들,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유일신 알라에게 예배를 드린 후 하늘로 올라가서 알라의 계시를 받는데 오마이아 왕조는 무함마드의 승천 장소가 바로 이 바위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바위 돔 사원이 지어지게 된 것이다.

이후 시간이 흘러 1993년 요르단의 국왕 후세인이 사제 650만 달러를 들여 24k 순금 80kg을 사서 1,200장의 금박을 바위 사원에 도배해서 붙이게 되는데 이렇게 해서 황금돔 사원이 탄생하게 된다.

 

황금돔 사원
 

 

알 아크사 사원 Al Aqsa Mosque

 오마이아 왕조의 6대 칼리프 왈리드 1세는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날아와 도착한 장소가 바위룸 사원 근처라고 믿었고 이곳에도 사원을 짓게 되는데 이 사원이 바로 705년에 지어진 '알 아크사 사원'이다. 아랍어 '알 아크사'는 '아득히 먼'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알 아크사 사원
 
 

결국 황금돔사원과 알아크사사원은 다른 사원인 것이다. 

통곡의 벽 Western Wall

'통곡의 벽’은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에 위치한 서벽(Western Wall)으로, 유대인들은 신전의 상실을 슬퍼하고 재건하는 것을 바라며 이곳을 찾아가서 기도하고 소원을 빈다. 이곳에는 종이에 적은 소원을 끼워넣으면 성취가 더 잘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통곡의 벽’이란 이름은 유대인들이 성전이 파괴된 것을 슬퍼하며 남은 벽을 붙들고 울며 기도했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통곡의 벽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 이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한 지붕 두 가족의 끊임없는 갈등 속에 있다. 서로가 성지라고 여기는 예루살렘의 바위제단 위의 사원들과 옛 성전의 무너진 성벽에라도 기도를 드리는 유대인의 모습에서 전쟁의 아픔을 겪고 있는 지금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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