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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약중간사의 키워드 헤롯대왕 가문과 아리스도블로

오늘은 성경에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은 신구역 중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헤롯 가문에 대한 포스팅을 하고자 합니다.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가장 중요한 인물이 바로 율리우스 카이사르입니다. 
1차 3두 정치가 행해지던 시절 카이사르는 로마의 서쪽인 갈리아로 원정을 떠났고요 또 다른 경쟁자였던 폼페이우스는 로마의 동쪽인 예루살렘을 주전 63년에 점령합니다.

 
그렇지만 카이사르가 주전 44년에 암살을 당하고요 카이사르를 계승했던 옥타비아누스는 주전 31년에 정적이었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 군대를 악티움 해전에서 무너뜨리고 로마의 초대 황제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로마 제국의 토대가 되었던 1차 2차 3두 정치는 로마 역사에서는 굉장히 중요한데요 이때 유대 사회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성경에서는이 시기를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을 살펴보면 이 시대를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의 해롯 가문을 이해한다면 신약 성경을 이해하는 굉장히 중요한 시선을 갖게 될 것입니다. 

 

헤롯대왕 가계도

 

 

헤롯 가문의 등장

주전 63년에 폼페이우스는 예루살렘을 정복하면서 유대 사회는 로마의 속주로 전락합니다. 주전 55년에 시리아를 관할했던 로마의 총독 가비니우스는 시리아의 한 부분이었던 유대 속주의 자치를 위해서 산헤드립 공회를 설립합니다. 대제사장을 의장으로 해서 다수의 사두개인과 일부 바리새인으로 구성된 70인 의회 산헤드린 공회는 유대 사회의 최고의 사법 기구였습니다. 산헤드린 공회가 유대 사회의 종교와 사회의 구심점이었다면 정치적인 권력을 장악했던 가문이 바로 해롯 가문이었습니다. 

 

헤롯 1세


이로써 헤롯가문은 자신의 입맛에 따라서 대제사장을 임명하고 폐위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해롯 가문은 유대 사회의 실세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헤롯 가문의 족보를 살펴보실 텐데요 이것을 이해하신다면 신약 성경을 읽으실 때 굉장히 도움이 되실 겁니다. 

 

헤롯 가문

 

헤롯 대왕 (Herod the Great)
├── 도리스 (Doris)
│   └── 안티파터 (Antipater)
├── 마리암네 1세 (Mariamne I)
│   ├── 알렉산더 (Alexander)
│   └── 아리스토불루스 (Aristobulus IV) 아리스도블로
│       ├── 헤롯 아그리파 1세 (Herod Agrippa I) 
│       │   ├── 헤롯 아그리파 2세 (Herod Agrippa II)
│       │   ├── 베레니케 (Berenice)
│       │   └── 드루실라 (Drusilla)
│       └── ... (기타 자손)
│   ├── 살람피오스 (Salampsio)
│   └── 키프로스 (Cypros)
├── 마리암네 2세 (Mariamne II)
│   └── 헤롯 보에투스 (Herod Boethus)
├── 말타케 (Malthace)
│   ├── 헤롯 안티파스 (Herod Antipas) 헤롯 안디바
│   ├── 아르켈라오스 (Archelaus) 아켈라오
│   └── 올림피아스 (Olympias)
├── 클레오파트라 (Cleopatra of Jerusalem)
│   └── 헤롯 필립 (Herod Philip) 헤롯빌립
├── 팔라스 (Pallas)
│   └── 파살리스 (Phasaelus)
├── 피드라 (Phaedra)
│   └── 로스 (Roxane)
└── 엘피디케 (Elpis)
    └── 살로메 (Salome)


우선 로마로부터 실권을 넘겨 받았던 인물은 바로 안티파터입니다. 이두메 혈통이구요 구약으로 따지면 에돔 족속이었습니다. 에서가 야곱을 괴롭혔던 것처럼 이두메 혈통의 해롯 가문이 유대인들을 지배한 이 상황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헤롯 가문에는 보시다시피 헤롯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성경에서는 구분 없이 헤롯으로 표기하고 있지만 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누가 누군지 구분할 수가 있었을 겁니다. 

학자들은 여러 헤롯을 구분하기 위해서 베들레헴에서 영아를 학살한 인물을 헤롯 대왕이라 표기합니다. 헤롯에게는 10명의 부인이 있었는데요 눈여겨 살펴볼 부인은 다섯 명입니다. 헤롯은 이두메 사람으로 에돔 혈통이 있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는 혈통적인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부인을 하스몬 혈통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면서 이런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고 했습니다, 


하스몬 가문은 마카비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했고 주전 142년에는 유대 사회의 독립을 이룬 가문입니다. 그렇지만 아내들이 많았다는 것은 왕위 계승 문제가 예견되는 일이었습니다,  하스몬 혈통의 두 번째 부인이 다른 부인들로부터 모함을 받아서 처형을 당하고 하스몬 혈통의 두 아들들도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런 일을 주도했던 부인이 네 번째 부인이었고 그녀로부터 태어난 인물이 아켈라오헤롯 안디바였습니다. 세 번째 부인과 다섯 번째 부인의 아들 이름은 똑같이 헤롯 빌립으로 같습니다. 이렇게 비슷한 이름들이 많지만 한번 구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분봉왕과 총독

어쨌든 헤롯 대왕은 로마 황제로부터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죽고 난 이후에 아들들은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서 암투를 벌입니다. 그러다가 두 번째 부인이 낳은 두 명의 하스몬 왕자들이 죽자 로마 황제는 아켈라오, 헤롯 안디바, 헤롯 빌립을 영주라는 의미의 분봉왕으로 삼아서 유대 사회를 쪼개서 영토를 나눠주게 된 겁니다.

 

이런 분봉왕에게 로마 황제는 통치 지역을 잘 다스리면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해 주겠다고 약속을 한 것입니다. 이런 시기에 유대인의 왕이라는 예수가 등장해서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았으니 이 분봉왕은 얼마나 예민했겠습니까. 그 중에서 아킬라오는 예루살렘과 유대 지역을 통치했고 헤롯 안디바는 갈릴리 지역을, 그리고 헤롯 빌립은 최북단 지역을 통치했습니다.

 

그러나 성격이 무척 포악하고 잔인했던 아켈라오는 유대인 대표들로부터 고소를 받게 되었고 로마 황제는 아켈라오를 추방하고 그 지역에 총독을 파견합니다, 주후 6년에 파견한 초대 총독이 코프니우스고 주후 26년 36년까지 파견된 인물이 바로 본디오 빌라도입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왕을 꿈꿨던 헤롯 안디바는 혈통적인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이두메 혈통이었죠. 반면 하스몬 혈통을 가진 자녀들 중에서 헤로디아는 헤롯대왕의 세 번째 부인의 아들과 결혼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아들은 분봉왕조차도 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혈통이 필요했던 헤롯 안디바는 헤로디아를 원했고 하스몬 혈통의 헤로디아는 가장 유대인의 왕에 근접한 헤롯 안디바를 원했던 겁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은 둘 다 결혼한 상태지만 이혼을 하고 이렇게 부당한 결혼을 하게 된 겁니다. 유대인의 왕이 되기 위해서 이런 미친 결혼을 할 때 위기를 느꼈던 인물은 바로 헤롯 빌립이겠죠. 그래서 그는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와 결혼을 합니다. 도대체 몇 촌 관계인 걸까요. 

이런 행태를 정죄한 인물이 바로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헤롯 안디바는 세례 요한을 처형하였고 예수님의 재판에도 등장했던 바로 그 인물이었습니다. 이때 로마에서 유학을 했던 헤롯 아그리빠 1세는 엄청난 로마의 인맥을 이용해서 유대인의 왕으로 금의환향했습니다. 

그는 로마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로마의 3대 황제가 된 가이우스 칼리굴라와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왕으로 돌아왔을 때 총독도 파견할 필요가 없었고 분봉왕도 더 이상 존재할 의미가 없게 된 겁니다. 그래서 헤롯 안디바와 헤롯 빌립은 폐위가 되고 헤롯 아그리파 1세가 유대인의 왕이 되어서 전 유대를 통치합니다. 얼마나 좋은 조건이었습니까. 로마 유학파였고 로마 황제가 친구였고 하스몬 혈통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유대인들 앞에서 교만하다 주후 44년에 갑자기 죽었습니다. 성경에서는 벌레가 먹어서 죽었다고 표현을 하고 있는데 학자들은 위궤양이 심해져서 천공이 생겨서 죽었다고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헤롯 아그리빠 1세를 계승할 유력한 인물이 한 사람이 보이죠. 바로 하스몬 혈통의 형제였던 아리스도블로 1세가 주후 44년에 죽었을 때 그의 아들이었던 헤롯 아그리파 2세를 주후 48년에 분봉왕으로 임명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겁니다 로마는 헤롯 아그리파 1세가 주후 44년에 죽었을 때 유대 속주를 관활해야 때문에 파두스라는 인물을 총독으로 파견하지만 헤롯 아그리빠 2세는 4년이 지난 48년이 되어서야 분봉왕으로 파견했다는 점입니다. 

 

아리스도블로

왜 4년간 로마는 기다렸을까요. 흥미로운 점은 주후 48년에 아리스도불로가 죽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재구성하면 이렇습니다. 

 

헤롯 아그리파 1세가 죽은 이후에 로마는 아리스토불로가 유대 통치자로 가기를 기다렸습니다. 아리스토블로는 하스몬 혈통이었고 로마 유학파였고 로마의 인맥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아리스도블로는 유대 사회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나 필로에 따르면 아리스도블로는 평소에 로마의 인맥에 의지하며 사치스럽게 지냈던 그의 형제 헤롯 아그리빠 1세와 가치관이 무척 달랐고 그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조언했다는 기록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로마서 16장 10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블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라고 나옵니다.

학자들은 이 구절에서 아벨레라는 인물을 로마에서 활동하는 유대 고위층의 한 인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리스도블로 역시 아벨레와 이렇게 나란히 놓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아리스도블로를 하스몬 혈통의 왕자로 보는데 이견이 없습니다. 로마서는 사도 바울의 사역 말기에 기록됐습니다. 주후 60년대에 기록한 서신입니다.

 

사도 바울과 로마 교회가 기억하는 아벨레, 아리스토불로의 가족에 대한 평가는 이렇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시험을 받았으나 인정을 받은 것으로 그렇게 기억한다는 점입니다. 아리스도블로는 왜 유대땅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로마 유학 중에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그런 까닭에 권력을 위해서 손에 피를 묻히는 그 탐욕의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로마 교회 성도로 남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판단하지 않았을까요. 아리스도블로가 죽은 것이 주후 48년이고요 바울이 이 편지를 쓴것이 대략 주후 60년대 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렇게 아리스도블로의 권속 식구들에게 문안하고 있습니.다 

본국으로 돌아가면 권력자의 가족들이 될 수 있었지만 오히려 로마교회 성도로서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10여년간 살았던 이 아리스토블로 가족의 결단이 무척 가슴에 깊이 남습니다.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다는 시편의 말씀을 실제로 자신의 인생의 가치로 여겼던 그런 가족들의 모습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지향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쩌면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아서 유대인의 왕이 되게 해 달라는 것이 우리의 기도는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가치로 살아가야 할까요. 10여년간 바울과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기억된 아리스도블로 가족들이 무척 존경스럽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떻게 기록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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