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6일 아이티의 수도에서 남성 수십 명이 총리관저로 몰려간 일이 발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버스를 탈취하고 타이어를 불태우며 도로를 봉쇄하기도 했죠.
아이러니한 점은 이들이 바로 경찰이라는 점입니다.
AP 통신은 전현직 경찰관들이 최근 잇따라 발생한 경찰관 살해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서 시위를 벌인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현재 인권단체에 따르면 앙리 총리가 취임한 지난 2021년부터 최근까지 80명에 가까운 경찰들이 폭력조직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총리와 경찰 지휘부는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경찰들의 무기지원 요구를 거부하는 등 폭력조직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지난달 25일 폭력조직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된 경찰관 6명의 시신이 소셜미디어에서 공개되면서 경찰들의 분노가 폭발했고 시위가 벌어진 것입니다.
일명 갱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아이티
아이타는 인구 1,100만 명의 작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무장 갱단이 약 100여개에 이르고 수도의 60%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갱단의 범죄와 정치적 혼란으로 지난 2019년 이후 선거를 치를 수 없는 상황인데요, 지난달 9일 선출직 공무원 중에 마지막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상원의원 임기까지 만료되면서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됐습니다.
이런 아이티의 현실에 대해 한 정책 평론가는 이곳에는 더 이상 민주주의가 없다고 보면 된다라고 한탄했습니다.
그렇다면 아이티는 어쩌다 갱들이 지배한 무법지대가 된 걸까요.
현재 아이티는 갱들의 천국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과거의 아이티는 아메리카 최초 흑인 독립국이라는 자부심이 있던 국가였습니다.
아메리카 최초의 흑인 독립국, 아이티
1992년부터 스페인과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받았던 아이티는 미국의 독립전쟁 그리고 프랑스 혁명 등의 영향으로 지난 1804년 세계최초 흑인 공화국으로 독립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이티의 정국 혼란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1825년 프랑스가 아이티에 대해서 막대한 대상금을 요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여기서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프랑스가 아이티에 배상금을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상금을 달라고 요구했다는 점입니다.
프랑스의 주장을 요약하면 식민통치를 하면서 나라를 발전시키고 인프라를 구축해 줬으니 근대화 배상금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프랑스는 아이티에 1억 5천만 프랑을 청구했었는데요, 이 금액은 당시 프랑스 1년 예산과 맞먹는 금액이자 아이티 독립정부의 연간 수익보다 10배나 많은 금액이었다고 합니다.
독립과정에서 입은 피해를 복구하는데도 급급했던 아이티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하고 무자비한 금액이었죠.
결론적으로 아이티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 요구를 들어줘야만 했습니다.
당시 아이티는 독립 과정에서 백인을 대량 학살해 유럽 열강들로부터 미운털이 박힌 상황이었고 프랑스가 독립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20년간 다른 국가들과의 교역을 막았기 때문이죠.
추후에 양국가는 협의를 통해 9천만 프랑으로 배상금을 낮추긴 했지만 아이티가 프랑스의 원금과 이자를 모두 갚은 것은
1947년의 일이었습니다. 억지배상금을 갚는데만 무려 122년이 걸린 겁니다.
이 과정에서 국가발전에 써야 할 국가 예산의 대부분은 빚을 갚는데 사용해야 했고 때문에 오늘날 아이티를 이야기할 때면
최빈곤국이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흑인 노예들의 민중혁명으로 어렵게 독립했지만 제 1차 세계대전을 틈타 공격해 온 미국에 점령 당하는 등 서구 열강에 의해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아이티. 하지만 문제는 아이티 내부에도 있었습니다.
뒤발리에 가문의 독재
1957년부터 1986년까지 약 30년간 뒤발리에 가문의 독재가 이어졌기 때문이죠.
이 기간에 아이티의 해외 부채는 17.5배나 증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디발리에 가문은 국가부채 7억 500만 달러보다 더 많은 액수인 9억 달러를 스위스 은행 비밀 금고에 보관했던
것으로 알려졌었죠.
이런 상황에 국민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고 1986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면서 결국 뒤발리에는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이후 새 헌법이 통과되면서 총선이 실시됐고 1990년 민주화 투쟁의 앞장섰던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드디어 아이티 평화가 찾아오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아이티의 시련은 여기서 끝난게 아니었습니다. 아리스티드가 취임한 반년 만에 쿠데타로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했기 때문이죠.
사실 이 모든 과정에서 미국의 개입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20년간 아이티를 점령했던 미국은 냉전시기 쿠바의 전철을 밟는 것을 막기 위해서 디베리아 부자의 독재 정권을 지원해
왔었습니다.
아이티의 첫 민주선거를 통해 당선된 아리스티드 정부를 축출한 군사 쿠데타를 돕기도 했었습니다.
이후 1994년 빌 클린턴 행정부가 아이티 사태에 다시 한번 개입하면서 아리스티드 대통령을 복귀시켰고 아이티 정국 안정을 위해 군을 파병해 2004년까지 주둔한 바 있습니다.
이후 가까스로 자유를 되찾은 아리스티드는 반복된 쿠데타의 불안감을 느끼면서 한 가지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바로 군대를 해산시키는 것이었죠. 이후 치안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인력이 부족해진 아이티 정부는 빈민과 민간인까지 무장시키기 시작했습니다.
AP통신은 갱단이 늘어난 배경에 이 같은 아이티 정부의 결정이 있었다고 진단했는데요 한마디로 아리스티드의 결정이 아이티를 갱단의 천국으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20여년 후 군대를 재창설하긴 했지만 이미 돌이키기엔 갱단의 몸집이 너무 커진 이후였습니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 지난
2010년 아주 큰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아이티 대지진이었습니다.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발생
2010년 1월 규모 7.0의 대지진이 아이티를 강타했었죠. 그 여파로 30만명 이상이 사망, 18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국토가 폐허가 되면서 교도소가 붕괴돼 죄수들이 대거 탈출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참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같은 해 10월 콜레라 전염병이 창궐하기 시작한 겁니다. 이후 아이티 대부분 지역에 콜레라 피해가 확산되면서 5년 동안
74만여 명이 감염됐고 9천여 명이 사망했습니다. 비극에 비극이 더해지는 순간이었죠.
자연재해로 인한 빈곤과 실업 증가는 전체인구의 60%를 빈곤층으로 만들었고 이는 살인과 납치 등의 범죄로 이어졌습니다.
실제 한 통계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7년까지 살인건수가 증가했고 한 해 8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납치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난 2021년 7월 조분의 모이지 암살당한 이후 갱들의 장악력은 정점에 오릅니다.
아이티 갱단 G9 지미 쉐리지에
지난해 9월 아이티 갱단 G9(9개의 조직범죄단)는 연료저정권을 봉쇄하고 연료 공급을 차단하면서 도시 기능을 사실상 마비시켰고 이후 두목인 지미 쉐리지에는 현지 라디오에 직접 출연해 앙리 총리의 사태를 요구하기 위해서 연료 공급을 차단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갱단의 두목이 방송에 출연해서 총리 사태를 요구할 정도로 그 위세가 높아진 겁니다.
뿐만 아니라 같은 10월에는 총리가 참석한 아이티 독립영웅 추모 행사에 G9이 난입해서 총리를 쫓아내고 갱단 두목이 기념식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놀랍게도 이게 모두 실화입니다. 말 그대로 갱단의 나라가 되어버린 상황이죠. 하지만 현재 아이티를 통치하고 있는 앙리 총리가 노이즈 대통령의 암살되기 불과 이틀 전 임명돼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데다 의회와 대법원 선거관리위원회까지 완전히 기능을 멈춰서 이를 강력히 제지할 힘이 없는 실정입니다.
지난해 안보리 15개 이사국은 G9 지미 쉐리지에에 대해서 여행 금지, 자산동결, 무기 금수조치를 내린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리고 지난 10일 유엔 인권 최고 대표는 아이티의 갱단폭력이 살아있는 악몽을 만든다며 국제사회가 아이티에 군을 파견해야 한다는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식민지배, 자연재해, 독재로 인해 최빈국이 된 아이티. 아이티 국민들의 고통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2022년 인플레이션은 26% 이상 치솟은 상황에서 앙리 총리가 재정 부족을 이유로 석유 등 연료에 대한 보조금 지급 중단을 발표해 국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상가상 지난해부터 콜레라 발병 사례가 증가하면서 200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서
갱단과 전염병이라는 수많은 적들과 싸워야 하는 상황입니다
과연 이들은 언제쯤 평화를 맞이할 수 있을까요.
"아이티"는 카리브해의 서부에 위치한 공화국으로,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주민들이 가톨릭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티는 카리브해 섬 중에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독립 국가로, 1804년에 스스로 독립을 선언하여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차지했습니다. 이 나라는 대략 1,100만 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수도는 포르토프랑스라고 부르는 재건된 산호세입니다. 아이티는 역사적으로 어려움을 겪어왔고, 자연재해와 정치적 불안으로 많은 도전을 겪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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